아비투스(habitus)란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의 판단이나 행동을 만들어내는 내재된 계급의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 사회적 계급, 재산의 정도, 교육수준 등에 의해 쌓이고 축적된 생활양식이 어떤 사안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교육과 계급이 사람들의 문화적인 생활양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으로 검증한다. 그리고 실제적인 데이터로써 사람들은 사회적인 구조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강요받는다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것은 자연과학으로 치면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에 의해 우리는 조종당하며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유전자의 숙주역할을 할 뿐이다'라는 주장만큼 충격적인 것이다.
인간이 이룬 사회적 구조에 의해 인간의 아비투스는 내재화 되고 그런 내재화 된 아비투스에 의해 우리는 선택과 행동을 통해 다시 사회 구조로 외화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 더 특징지워지고 구별되어진다.
부르디외의 사회, 문화적 문제로의 접근방식은 그동안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경제적, 정치적 잣대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회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분석법을 제공하였다.
내가 일을 마친 후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특정 상표의 맥주에 집착하며, 선거때면 후보자의 프로필 같은 것은 보지도 않고 역선택을 하고, 자기전에 시청할 심야프로로 스포츠 중계와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나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닌 내가 살아온 환경과 사회 구조에 의해 내재화된 아비투스의 발현이란 사실에 인간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정해진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라는 결정론적 숙명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철이나 승강기에 문이 열리면 사람이 내리기 전에 올라타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습관, 습성, 관습, 논리, 이성, 이데올로기, 돌발행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인간 누구에게나 생활현장에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감각이나 양식이 있다. 이처럼 몸의 기억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아비투스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습관, 습성, 관습, 행동양식, 실천감각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프랑스어를 음차하여 아비투스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부르디외(P. Bourdieu, 1930-2002)는 인간, 집단, 사회, 민족의 내면에 잠재한 성향이나 의식체계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아비투스론에 접목시켰다. 지배계급이 상속되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부르디외에게, 그 상속의 고리를 끊는 것이야말로 인간사회의 평등을 이룩하는 지름길이었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교육이나 문화를 통하여 계급이 재생산된다고 보고, 그 재생산은 경제자본만이 아니라 문화자본이 주요한 원인이며 그런 것이 복합적으로 내면화된 것을 아비투스라고 보았다. 특히 예술은 단순한 창의성의 산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취향들이 갈등하는 계급투쟁의 현장이며 지배와 피지배가 드러나는 상징적 제도다. 하지만 예술은 자율성이 있는 제도로서 발생구조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무척 정치적인 것이고 여러 계급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는 대립과 갈등의 현장이다. 가령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도 다르고 문화적 이해도 다르다. 언뜻 보면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부르디외가 볼 때 아비투스는 계급과 관련되어 있고 그 계급은 상속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와 장(field)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어떤 환경, 상황, 조건이 한 사람/집단의 아비투스를 결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장이다. 아비투스는 의식의 내면에 잠재하다가 어떤 상황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표면화된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이기도 하다. 아비투스는 습관처럼 구조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습관보다는 문화적이며 기질과 연관이 있지만 기질보다는 구조적이다. 아비투스는 무의식에 내면화되어 있으나 규칙과 질서가 있다. 이처럼 아비투스는 성장과정, 직업, 교육수준, 출신지역, 인종, 경제적 상황, 문화, 기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다. 한 개인이 가진 문화자본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아비투스를 통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진단하고 그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자본론과 아비투스론�! �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아비투스 habitus |작성자 미드필더
(충북문화예술연구소장 김승환, 2009년 1월 8일 목)
결국 쉽게 얘기하자면 무의식적인 습성이나 습관인데, 이 무의식의 근저에 결국 계급의식이 있다는 말인 듯 싶네요. :)
아비투스에 대해서 찾아보다 갑자기 정몽준씨의 버스요금 70원 발언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맞겠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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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발언은 3조 6,000억 원이 넘는 정 후보의 재산이 서민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펼친 공 후보의 공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동안 줄곧 지적돼온 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울러 "대중교통 요금조차 모르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겠느냐?"라는 힐난까지 들었다. 실제로 정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버스비 70원' 발언을 비꼬며 비난하는 네티즌 글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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